아무리 오랜 세월 맨살로 부딪치며 내장 안까지 다 안다고 생각하던 부부도 서로의 성적 욕구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해 애꿎은 등만 째려볼 때가 있다. ‘하고 싶은 날’이 꼭 같으면 얼마나 좋을까마는, 그거야말로 한날한시에 함께 눈감자는 약속만큼이나 허황되기도 하다. 문제는 내가 원치 않을 때 상대방은 원한다는 것이다. 물론 그 반대의 경우도 허다하다. 배부른 상태에서 배고픈 자의 마음을 온전히 이해할 수 없듯, 성욕 역시 마찬가지다. 자신의 입장에서 그다지, 혹은 극도로 ‘하고 싶지 않은 날’인데 상대의 눈빛은 끈적끈적 녹아드니 참으로 난감하다.

부부 사이일수록 거절의 기술을 익혀야 한다. 순간적으로 혐오스러워하거나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이면 상대방에게 지우기 힘든 상처로 남을 수 있기 때문. 특히 남자보다 여자들이 이러한 거절에 더욱 모멸감을 느끼고 좌절하는 경향이 있다.

여성으로서 굴욕적이라고도 할 수 있는 ‘잠자리 실패담’을 들려준 아내들은 한결같이 “알고 보니”라는 단어를 썼다. 남편이 잠자리를 거부했던 이유가 “그전에는 도통 이해할 수 없었는데 ‘알고 보니’ ○○○ 때문이더라”는 것이다. 애초에 이유를 말하지 않다가 끈질긴 추궁 끝에 알게 되거나, 오랜 시간이 흐른 뒤에야 아내 스스로 깨달은 경우가 많았다. 언제나 그렇듯, 말하지 않아도 알 것이라는 그릇된 추측이 가져온 결과다.여기 소개된 7명의 아내는 미처 남편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해 잠자리에서 거절당한 기억을 갖고 있다. 섹스에서 프로인 부부는 섹스 테크닉뿐 아니라 마음을 나누는 법에서도 프로다. 오늘 밤, 남편의 마음부터 두드려보자. 진솔한 대화가 가져오는 뜨거운 섹스의 환희를 맛볼 수 있을 것이다. 

 
‘미안하다, 피곤하다’ 지나친 배려에 그만…

남편은 영업 일을 한다. 식음료 관련 일이다 보니 계절에 따라 바쁜 정도가 달랐다.

특히 여름철이면 말 그대로 눈코 뜰 새 없었다. 새벽에 나가 새벽에 들어오기도 했다.

그래도 우리 부부는 두둑해진 월급 통장을 보며 힘을 내곤 했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남편은 다소 한가해지는 겨울에도 늘 무기력해 보였다. “피곤해. 나 좀 잘게”라는 말이 퇴근 인사처럼 돼버렸다. 하지만 제대로 씻지도 않고 잠이 든 남편을 보면 안쓰럽기도 해 말없이 이불을 덮어주고 고양이 걸음으로 다니곤 했다. 어느 날 저녁, 파전에 막걸리로 술상을 마련하고 남편을 불렀다. 모처럼만에 받아보는 술상이라 그런지 남편도 흔쾌히 마주앉아 술잔을 기울였다. 11시가 다 되었을 무렵 “자기야, 우리 같이 자본 지 너무 오래된 거 알지?”라며 슬쩍 운을 띄웠다. 남편은 빙그레 웃기만 했다.

그것이 승낙의 신호라 여긴 나는 얼른 욕실로 들어가 샤워를 하고 새로 산 시스루 속옷을 입고 나왔다. 남편은 이미 침실로 들어간 모양이었다. 약간은 흥분된 마음으로 침대에 올라 슬쩍 잠이 든 것처럼 보이는 남편의 어깨를 감싸자, “피곤하다.그냥 자자”며 내 손을 슬그머니 내려놓았다. 우리 가정을 위해 애쓰는 남편의 모습을 안쓰러워했는데, 남편은 모든 걸 ‘피곤한 탓’으로 돌리려고만 했다. 지나친 배려가 오히려 화를 부른 게 아닌가 싶어  씁쓸하기만 하다.

손정음(부산시 동래구 온천동)

 
돈 모으는 재미 때문에 밤의 재미는 잊어버리고…

우리 부부는 결혼 전부터 성관계를 가졌고, 결혼과 거의 동시에 첫아이가 태어났다. 남편은 그저 친구 같기만 하던 우리 사이에 아이가 생긴 것이 무척 신기한지 퇴근하면 곧장 집으로 달려왔다. 술 약속도 그전보다 눈에 띄게 줄었고, 아이와 노는 모습이 옆에서 보기에도 행복해 보였다. 아이가 태어난 이후 남편이 하는 일은 술술 잘 풀렸다. 평소 남편이 꼭 가고 싶어 하던 회사에서 경력직 입사를 제의해왔고, 남편은 오래 고민하지 않고 직장을 옮겼다. 연봉도 오르고 동료들도 마음에 든다며 신나 하던 남편의 모습이 지금도 생생하다. 다만 새 직장은 집에서 너무 멀었다. 편도 두 시간이 걸리니 하루에 네 시간을 길에서 허비해야 했다. 그래도 남편은 오로지 돈 모으는 것에 신나 했다. 어머니를 일찍 여의고 무능력한 아버지 밑에서 자란 남편은 가난이 죽기보다 싫다고 입버릇처럼 말하곤 했다. ‘돈이 곧 행복’이라는 게 그의 지론이었다.

모두 수긍할 순 없지만 남편의 말에도 일리가 있었고, ‘얼마나 고생이 심했으면’ 하는 마음에 남편이 하는 대로 그냥 내버려두었다. 목돈이 생기자 남편은 재테크에 열을 올리기 시작했다. 안 그래도 부족한 수면 시간을 쪼개 증권 시황을 살피고, 경매 관련 서적들을 탐독했다.

성생활 따위는 안중에도 없는 듯했다. 조르기도 하고, 며칠씩 각방을 써도 남편의 반응은 냉담했다.

그 시간에 더 자겠다는 식이었다. 돈밖에 모르는 남편, 언제쯤이면 통장에서 눈을 떼고 내게 눈길을 줄지 까마득하다.

염기영(경기도 수원시 팔달구)

연애하는 동안 남편은 스킨십을 즐겼다. 걸을 때도 언제나 팔짱을 끼거나 허리를 감싸 때로 불편함을 느낄 정도였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성관계를 요구하지는 않았다.

미드 ‘섹스 앤 더 시티’에 탐닉했던 나는 샬롯처럼 처녀성을 지키고 순결함을 유지하는 것이 일생의 목표였고, 남편은 그런 면에서 믿음직스러웠다. 과도한 스킨십에 불만이 있었지만 결혼을 승낙한 건 그 때문이었다. 하지만 결혼 이후 남편의 태도는 말 그대로 목석이었다. 도무지 남편의 표정에서 환희를 느낄 수 없었다. 혹시 내가 너무 소극적이어서 그런가 싶어 이제까지의 조신함을 떨치고 적극적으로 남편에게 다가갔다. 먼저 키스도 하고, 애무도 하고, 전희를 위한 노력들도 아끼지 않았다.

그간 배워둔 온갖 테크닉으로 남편을 감동시키려 했지만, 남편의 반응은 태연했다.

결혼 14년차, 마흔을 목전에 두었건만 나는 단 한 번도 오르가슴을 느껴보지 못했다.

스킨십은 여전히 좋아하지만 섹스는 그에게 아무런 매력이 없는 것 같다.

도대체 저 목석을 어떻게 흔들어 깨워야 할지 알 길이 없다. 마흔이 다 되어서야 ‘이럴 줄 알았으면 결혼 전에 관계를 가져볼걸’ 뒤늦은 후회를 할 뿐이다.

채미화(울산시 동구 동부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