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루(훔치기)라는 독특한 규정을 두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것을 좋게 생각하면 일종의 경기의 묘미라고 할 수가 있을 것입니다.

상대방의 방심이나 실수를 이용하여 이익을 취하는.

좀 치사하기는 하지만 인간사가 그런 것이 아니겠습니까.

무엇보다도 야구야말로 우리네 인간사의 축소판이라고 생각하는데요.

축구와 비교하자면 야구는 상당히 아기자기하고 미묘한 스포츠입니다.

사실 축구는 차고 달리는 것이 전부이지만

야구는 공격자(타자)와 방어자(투수)의 고도의 심리전입니다.

야구는 기본적으로 투수 놀음이라고 하는데

빠른 공만 잘 던진다고 좋은 투수는 아니며

아무리 빠른 공을 던져도 제구(컨트롤)가 되지 않으면 단지 흉기일 뿐입니다.

또한 직구만 던져서는 아무리 빠르더라도 얻어맞게 마련입니다.

적절히 변화구를 섞어서 던져야 하는 것이죠.

변화구의 경우에도 아무리 낙차가 클지라도 제구가 되지 않으면 모두 쓰레기(버리는 공)일 뿐입니다.

또한 그때그때 공의 완급조절도 해야 합니다.

시속 150km대의 강속구가 계속 들어올 때보다

그러다가 갑자기 느린 변화구가 들어올 때 타자는 훨씬 더 스윙에 어려움을 느낄 수밖에 없습니다.

그 모든 과정은 결국 투수와 타자의 심리 싸움입니다.

공 하나가 공중에 뿌려질 때마다 투수와 타자의 고도의 심리가 왔다갔다하며 충돌하는 것입니다.

물론 투수와 타자의 기술적 실력과 감독의 작전, 그날의 전반적인 컨디션과 운도 중요하지만

그럼에도 야구를 기본적으로 인간의 심리 게임이라고 하는 이유입니다.

예컨대 경기가 시작되어 투수가 초구(제1구)를 던질 때

그대가 투수라면 스트라이크를 던지겠습니까 볼을 던지겠습니까.

그대가 타자라면 설령 스트라이크가 들어오더라도 하나 버린다고 생각하고 그냥 서 있겠습니까 설령 볼이 들어오더라도 한 번 스윙을 해보겠습니까.

예컨대 투스트라이크 쓰리볼의 경우

그대가 투수이거나 타자라면 각각 어떠한 선택을 하겠습니까.

투수의 경우 반드시 스트라이크를 던져야 하겠지만 의도적으로 볼을 던질 수도 있습니다. 스트라이크를 던져야만 하는 투수의 처지를 알고 있는 타자로서는 스윙할 가능성이 많은데 그 상황을 역이용하는 유인구입니다.

타자의 경우로 바꿔서 생각해 보아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컨대 9회말 2사 만루 투스트라이크 쓰리볼의 경우

그대가 투수이거나 타자라면 각각 어떠한 선택을 하겠습니까.

그야말로 투수나 타자나 관중들이나 피가 마르는 상황이 아닐 수가 없습니다.

이 경우 투수나 타자나 관중들이나

그들 모두의 머릿속에서 떠다니며 복잡하게 얽히고설킨 생각들을 모아서 저장한다면 우주의 용량도 부족할 것입니다.

하긴 한 사람의 생각을 저장하기에도 우주는 부족할지도 모릅니다.

어떻습니까?

남녀의 연애 심리도 이와 똑같다고 할 수가 있을 것입니다.

서로 밀고 당기는 남녀의 머릿속은 투수와 타자의 머릿속처럼 실로 복잡할 것입니다.

내가 너무 좋아하는 티를 내면 상대방이 나를 싫어할 수도 있고 나를 우습게 생각할 수도 있으니까 이쯤에서 약간 물러나서 상대방에게 큰 관심이 없는 척 내숭을 떨어야겠다. 근데 그러다가 눈치 없는 상대방이 진짜 떠나가 버리면 어쩌지.

그럼 상대방은 이미 그런 내숭을 눈치 채고 또다른 전술전략적 심리전으로 나올 것이고.

누가 투수이고 누가 타자인지는 규정지을 수가 없을 것입니다. 남성이 투수일 수도 타자일 수도 있고 여성이 투수일 수도 타자일 수도 있겠죠. 그때그때 달라질 수가 있을 것입니다. 다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투수와 타자 사이에 공이 오가는 것처럼 남성과 여성 사이에도 복잡미묘한 심리가 끊임없이 오간다는 사실이겠죠.

남녀의 연애 심리와 투수와 타자의 심리를 비교 분석하는 글을 쓴다면 책 한 권은 쓸 수가 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남녀의 연애는 야구와 근본적인 차이점이 있습니다.

상대방을 반드시 이겨야만 하는 야구와는 달리

남녀의 연애는 상대방을 이기거나 제압하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결국 이기기 위한 것이라면 남녀 둘다 윈윈하는 것이며

설령 어느쪽이 이기더라도 야구에서처럼 상금을 받는 것도 아니고 병역면제를 받는 것도 아니며 대한민국의 국위를 선양하는 것도 아닙니다.

따라서 일방적으로 이기고자 한다면 연애를 포기하고 야구선수가 되면 됩니다.

특히 여성들은 야구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데요.

물론 경기 시간이 좀 길어서 흠이기는 하지만

알고 보면 야구처럼 재미있고 흥미진진한 스포츠도 없습니다.

 

그나저나 그대는 직구를 잘 던지나요 변화구를 잘 던지나요.

사랑하는 사람이 나타나면 직구를 던지겠습니까 변화구를 던지겠습니까. 교묘히 섞어서 던지겠습니까.

안 가르쳐준다고요?

가르쳐주기 싫으면 말고요.

다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야구에서와는 달리 그대는 직구든 변화구든 상대방에게 헛스윙시키기 위해서 무지막지하게 세게 던지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이 칠 수 있게 일부러 살살 던질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하지만 그것은 야구 규정 위반입니다.

그렇다고 상대방의 두개골을 겨냥해서 헬멧이 깨질 정도로 무지막지하게 세게 던진다면 정말 큰일입니다.

그것은 법 규정 위반이며

그러다가 상대방 죽습니다.

그대는 감옥가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