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스&터치 - 내용보기

스킨쉽의 근원은 사실 어머니의 피부가 유아에게 가져다 주는 안정감이다. 하지만 나이를 먹게 되면서 부모와의 스킨쉽은 점점 서먹해지고 사랑하는 연인과의 스킨쉽으로 그런 허전함을 대치하려는 욕구가 생기게 된다.

어렸을 때는 물론 성인이 된 이후에도 다른 사람을 껴안을 기회를 갖는다는 것은 정신 건강에 아주 중요한 요소가 된다. 남녀는 분리된 한 몸이라는 식의 신화를 들먹일 필요도 없이, 사람이란 원래 그렇게 자신이 사회로부터 격리되어 있지 않다는 사실을 항상 확인해야만 하는 존재인 것이다.

각설하고, 한국 여자에 있어서 스킨쉽이란 상대방에 대한 자기 감정의 수준을 가장 강력하게 표현하는 수단이다. 또한 우리 나라 여자들은 스킨쉽이 어디까지 진행되었느냐에 따라 상대에 대한 자기의 감정을 판단해 버리기도 한다. 이 두번째 경향은 종종 한국 여자들이 스킨쉽에 관해 얼마나 보수적인 태도를 유지하고 있는가를 가장 적나라하게 보여 주는 증거가 된다. 즉 그것이 자유의지에 따른 것이었든 강압에 의한 것이었든 관계없이 스킨쉽이 진행된 정도 자체가 남녀 관계의 질을 좌우해 버리는 웃지 못할 현상이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스킨쉽의 한국적인 의미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이것이 조선 시대에나 있을 법한 일이고, 현대 자본주의 한국에는 적용될 수 없는 말이라고 생각할지 모르겠다. 조선 시대에는 외간 남자에게 알몸을 한번 들키기만 해도 무조건 결혼을 해야만 했던, 남자들 입장에서는 아주 좋은 -혹은 나쁜- 풍습이 있었다. 그러나 21 세기를 코앞에 두고 있는 요즘에도 이런 풍습은 여전히 한국 여자들의 마음 깊은 곳에 남아 있다.

짝을 찾는 사람들은 이성 관계에서 상대방에 대한 자신의 감정이 어떤 것인지, 혹은 상대방이 자신을 어떤 감정으로 대하고 있는지 끊임없이 확인하려 노력한다. 그리고 이런 문제를 판단하는 데 있어 여자들은 남자와는 달리 직관적이고 감성적인 수단에 의존하는 경향이 있다. 이것이 여성과 남성의 가장 큰 차이점 가운데 하나라는 점은 이미 잘 알려져 있으므로, 굳이 다시 설명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여자란 간단한 덧셈을 할 때에도 좌뇌와 우뇌를 함께 사용할 정도로 대단히 감성적인 동물인 것이다. 정리하자면, 여자에 있어서 남자에 대한 감정이란 먼저 정신적인 이유로 애정이 싹튼 다음 그것이 스킨쉽으로 연결되기도 하지만, 그 반대의 경우도 가능하다는 것이다.

얼마 전 중국에서는 어떤 여자가 자신을 강간한 남자를 신고해 감옥에 보낸 뒤, 그가 출소하기를 기다려 결혼했다는 소식이 외신을 통해 알려진 일이 있다. 그런데 이런 사례는 중국에서 뿐 아니라 우리 나라에서도 흔한 일이다. 사람들은 이런 얘기를 들을 때마다 ’어떻게 그런 행동이 가능할까? 여자란 참 이상한 동물이야.’ 하고 고개를 갸웃거릴지도 모른다. 하지만 여자의 감성 구조와 여성을 둘러싸고 있는 사회 환경 같은 것들을 감안해 곰곰 생각해보면 별로 이상할 것도 없는 일이다. 이러한 현상은 중국이나 한국 사회에 아직 진하게 남아있는 가부장적 사회 윤리에 여성 특유의 감성적인 애정관이 합쳐져 생겨나는 것이다.

초보적인 스킨쉽은 특히 학교나 직장, 교회 같은 일상적인 사회 조직에서 알게 된 남녀 관계에서 결정적인 중요성을 갖는데, 이런 경우엔 남자나 여자 쪽에서 [대개는 남자] 스킨쉽을 시도한다는 것 자체가 이미 ’난 너를 더 이상 단순한 직장 동료나 선후배로 보지 않는다’는 선언의 뜻을 갖는 것이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연인 사이에 이루어지는 스킨쉽은 관계가 진전됨에 따라 비슷한 양상으로 발전한다. 그런데 한국적인 남녀관계의 문제는 스킨쉽이 연인 사이의 단순한 감정 교류 수단의 수준을 떠나, 자주 남녀 관계의 질 자체를 규정하는 실체가 된다는 데 있다. 평소부터 스킨쉽 문화의 전문가가 되어 자연스런 접촉과 애정 전달에 습관이 되어 있다면 그런 식의 오해나 어색한 헤어짐 같은 것은 미리 막을 수도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