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귀포에는 홍리라 불리우는 마을이 있었다. 예전부터 힘이 장사들이 많이 나왔는데 그 중 한 전설을 소개한다.

홍리에 고대각이라고 힘이 장사인 사람이 살았었다. 그 부친은 소를 여러 마리 기를 정도로 여유 있게 살았다. 단지 그에게 소원이 있다면 그것은 힘센 아들을 하나 얻는 일이었다. 
그래서 그 부인이 임신을 하자 그는 힘센 아들을 얻기 위하여 소를 열 두 마리나 잡아 먹였다. 그러나 낳고 보니 아들이 아니고 딸이었다. 실망이 매우 컸으나 다음을 기약하고 참았다. 그 후에 다시 임신을 하자 이번에는 열 마리만 잡아 먹였다. 열 두 마리를 잡아 먹이면 다시 딸을 낳을까 두려웠기 때문이다. 그런데 낳은 것은 아들이었다. 고대각 부친은 매우 흡족하게 생각하였다. 
오뉘는 잘 자랐다. 외모도 남달리 뛰어나고 힘도 세었다. 고대각 부친은 여간 다행으로 생각하질 않았다. 고대각의 힘은 그 주위에서 알아 줄 정도로 소문나 있었다.
어느 가을이었다. 고대각은 밤에 산디 밭을 지키려고 갔다. ‘쿨쿨왓’이란 밭에 산디를 갈아 잘 여물었는데 베어 놓고는 밤에 지키지 않으면 도둑놈들이 다 지어 가버리는 일이 종종 있었기 때문이다.
저녁을 먹고 온 고대각은 밭 한편 구석에 비스듬하게 기대어서는 담배를 피워 물고 있었다. 밤이 이슥하니 쌀쌀한 냉기가 옷섶으로 스며드는 게 으스스하게 춥기도 하였다. 그 때였다. 어떤 사람이 밭 안으로 퉁하고 뛰어 들었다. 그래도 고대각은 가만히 동정만 살폈다. 그 괴한은 밭 한가운데로 들어가더니 주위를 한번 휘둘러 보고는 엎드려 비어논 벼를 묶기 시작하였다. ‘이놈아’하고 소리치고 싶었지만 하는 거동이 너무나 당당하고 대담하여 좀 더 두고 보기로 하였다. 그 사람은 어느 새 인지 밭 가운데 있는 벼를 거지 반 묶고는 한가운데로 모아 놓아 짐을 꾸리기 시작하였다. 짐 꾸리는 것을 보고서야 그 사람도 보통이 아니란 것을 알 수 있었다. 고대각은 그냥 두었다. 그리고는 몰래 그의 뒤를 따라 가 보았다. ‘언제고 내가 값을 톡톡히 받을 때가 있을 테지’. 하고 생각은 하면서도 그냥 내버려 두었다. 날이 훤하게 밝자 그 산디 지어간 사람을 만났다.
“왜 남의 곡식을 물어보지도 않고 지어갔소”
좀 퉁명스럽기는 하지만 조용히 물어 봤다.
“곡식은 떨어지고 물어 봤자 지어가라고 할 것 같지는 않고 해서 내가 한 짐 지어왔소. 나중에 내가 값을 갚을 것이니 그리 아시오.”
상대는 미안한 기색도 없이 아주 의젖하게 말하는 것이었다. 고대각은 더 따지지 않고 집으로 돌아와 버렸다.
몇 년 후였다. 그 산디 지어간 사람에게서 산디 값을 받아가라는 기별이 왔다. 그는 육지와 쌀장사를 하는 사람이었는데 이번 쌀장사가 잘 되었으니 와서 받아가라는 것이었다.
고대각은 때를 맞추어 갔다. 그의 무곡 실은 배는 갯가에 쌀을 실은 채로 그냥 있었다.
“오래간만입니다. 전에는 제가 실례가 많았소. 오늘 그 값을 갚을 테니 가져갈 만하게 가져가시오.’
그는 배를 가리키며 마음대로 지어가라고 고대각에게 말했다. 고대각은 아무 말 없이 쌀 실은 배로 올라갔다. 그리고는 자근 자근 쌀 가마니들을 포개어 짐을 꾸렸다. 그러다 보니 배 안에 잇는 쌀 가마니가 겨우 한 짐 밖에 되질 않았다. 고대각은 배 안에 있는 쌀을 몽땅 한 짐에 지어 나오면서,
‘더 가져 가려 해도 쌀이 없어 이것밖에 못 가져 갑니다.”
이렇게 한 마디하자 그를 바라보고 있던 배임자는 가슴이 뜨끔하였다. 그날 밤에 자기가 너무 당돌하게 그 집 산디를 지고 온 게 미안하였다. 저 힘에 한번 싸움이라도 붙었으면 어떻게 되었을까 하니 가슴이 오싹하였다.
“쌀값을 제대로 갚는군”
배 임자는 혼자 중얼거렸다.
이렇게 힘이 센 고대각도 그 누이에게 들면 힘을 못썼다. 어느 해 겨울이었다. 모관 동촌에서 온 섬 장사들이 모여 씨름 대회가 벌어졌다. 고대각은 여기에 참석하였다. 아직 그의 힘이 알려지기 전이었다. 한참 씨름이 고조를 이룰 즈음에 고대각이 썩 나섰다. 한 사람, 두 사람,…. 그렇게 이겨가는데 그를 당할 사람이 아무도 나타나지 않았다.
“저 친구 안 보던 사람인데….”
“남의 지역에 들어와 뻐기니 건방지군”
분위기가 이상하게 돌아가는데 어떤 사람이 나타났다. 순식간에 고대각은 지고 그 사람이 이겼다.
새로 이긴 그에게 상금이 주어졌다.
집에 돌아온 고대각은 자리를 펴고 누워 바깥 출입을 안 했다. 생각할수록 분통이 터지는 일이었다. 이긴 싸움터에서 그 모른 놈이 나타나 훼방을 놓다니 억울해 마지 않았다.
그때였다. 마당으로 들어서는 사람이 있었다. 고대각의 누이였다. 
“고대각 어디 갔니?”
그는 돌아오면서 고대각을 찾았다. 방안에 틀어박혀 있다는 말을 듣고는 그 누이는 방을 휙 열었다.
“사내가 대낮에 자면 어떻게 하겠다는 거야?”
한 마디 하면서 상금으로 받은 것을 앞으로 던졌다. 순간 고대각은 누이의 얼굴을 다시 보았다. 
“힘을 쓴다고 함부로 다니지 말아라. 더 조심을 해야 하는 거야. 내가 네게 그걸 알려 주려고 씨름판에 나간 거야. 앞으로는 더욱 조심하여 힘을 써야 한다.”
고대각은 누이의 말에 고개를 숙였다. 
고대각은 힘을 쓸 때마다 누님의 충고를 생각하곤 하였다. 그래서 고대각은 오래도록 장사로서 그 힘을 쓰면서도 큰 화를 당하지 않았다.